거부권 시점 촉각…법정 기한은 22일까지
'압박 수위' 높이는 野…10번째 거부권 법안 '정치적 부담'
'조건부 수용' 꺼내든 尹…여론 설득도 관건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원 특검법'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시사했지만 막판까지 고심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국의 수사가 마무리된 뒤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특검을 해야 한다는 판단은 명확한 상황에서 여론 추이도 지켜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한 특검 '조건부 수용' 등 여론 설득 노력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은 '해병대원 특검법' 거부권 행사를 놓고 시기 등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지난 2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해 7일 정부로 이송됐다. 대통령은 정부로 이송된 법안을 검토해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이르면 오는 1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이 건의될 여지가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거부권 행사 법정 기한(22일)이 아직 남은 만큼, 좀 더 숙고해 오는 21일 국무회의나 임시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대통령실은 해병대원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일방 처리된 특검법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큰 만큼 대통령실은 향후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는 법안은 거부권 행사를 원칙으로 해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특검의 취지를 보더라도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지켜보고, 수사 관계자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일단 믿고 더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셈이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거부권 행사를 결심한 것으로 봐야 하느냐'는 물음에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尹, 거부권 행사까지 고심할 듯…'압박 수위' 높이는 野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거부권 행사 결심 배경으로는 '보충성의 원리'를 대전제로 하는 특검의 성격상, 수사 당국의 수사 결과가 미진하거나 부실 의혹이 있을 때 특검을 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이 설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를 믿지 못하고 특검부터 추진하는 건 '자기 부정'이라는 비판 의식도 있다. 아울러 현재까지 13차례 특검 도입 사례 중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다만 거부권 행사에 있어 여론 설득은 관건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해병대원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57%로 절반을 넘었다. 특히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서도 43%가 특검 도입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 조사,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1.2%.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윤 대통령이 이번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재의요구가 이뤄진 10번째 법안이 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방송 3법',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9개 법안에 대해 5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그만큼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야권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정의당, 진보당, 새로운미래 등 야권 6개 정당 지도부는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해병대 예비역들과 기자회견을 하고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까지 여론 추이를 살펴보고 설득 노력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수사 결과를 보고 만약에 국민들께서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 안 된다' 하시면 그때는 제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고 강조했다.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수사 결과를 토대로 '조건부 수용' 가능성도 내비친 것이다. 이러한 대안 등을 놓고 야권과의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실은 우선 고위 당‧정‧대 협의회, 여당 지도부와의 만남을 통해 당과의 '밀착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12일 고위 당·정·대 협의회엔 정진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인사들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13일 만찬에선 윤 대통령이 직접 여당 신임 지도부와 소통을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번 고위 당·정·대 협의회에서 특검 대응과 관련한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오는 13일 만찬에서 특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논의가 오갈지 주목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굳이 서둘러야 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당정 간 회동은 물론 이번 주엔 민생토론회 등 일정도 추가된 만큼, 분위기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 역시 "당장 오는 국무회의에서 처리하기엔 관계 부처 검토 등 일정이 다소 빠듯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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