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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4-05-06 1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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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장기집권 성공했지만… 연이은 악재에 가시밭길 예고
내용

 

입력2024.05.06. 오후 12:01

 

지난 4월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의원 협의회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의원 협의회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 photo 뉴시스

러시아의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심기가 편치 않을 듯하다. 소련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은 지난해 3월 다섯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주축으로 2000년부터 철권독재를 실시해 온 그가 임기가 종료되는 2030년 또다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소련을 30년간 지배한 독재자 스탈린을 능가하는 최장기 독재자가 될 수 있다.

현재 푸틴의 입장에서는 유력한 경쟁자도 보이지 않는다. 보리스 넴초프, 알렉세이 나발니 등 대중에 인기 높은 유력 정치인들은 대부분 제거됐다. 2022년에 벌인 우크라이나 전쟁도 서구의 분열로 조금씩 승기가 보이는 듯하다. 서구의 경제제재도 중국과 인도에 대한 원유수출로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오히려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 생산에 주력하는 전시경제는 과열 우려가 나올 정도로 잘 돌아간다. 지금까지 푸틴의 종신집권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거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테러, 대홍수 등 대형 악재(惡材)가 그치지 않고 있다.

먼저 터진 악재는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지난 3월 22일 모스크바 인근의 크로커스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이다. 테러범들이 공연장에 난입하여 기관총으로 관객석에 총격을 가해 144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부상했으며 아직도 수십 명은 실종상태이다. 늑장 출동한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범인들은 모두 타지키스탄인들이었다. 서구 언론들은 이슬람테러조직 IS-K의 소행이라고 보도했으며, IS-K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푸틴은 하루가 지나서 우크라이나와 서구가 연계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국제대테러센터의 아드리안 슈투니 선임연구원은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는 푸틴에게는 "엄청난 실패"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러시아를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약속하며 다섯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며칠 만에 발생한 테러는 푸틴의 이미지와 신뢰도에 가해진 타격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장기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발생한 테러는 푸틴이 '국내 안보'를 얼마나 소홀히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4월 5일부터 발생한 대홍수로 물에 잠긴 러시아 오렌부르크 일대. photo 뉴시스

지난 4월 5일부터 발생한 대홍수로 물에 잠긴 러시아 오렌부르크 일대. photo 뉴시스

극우파들도 '테러 서구 배후설' 믿지 않아

과거에도 테러가 발생하면 푸틴은 독립을 추구하던 체첸이나 서구의 음모로 치부하며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확보해 왔다. 이번 우크라이나 책임론도 성공하려면 전쟁을 지지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적극적인 동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테러의 배후가 우크라이나와 서구라는 푸틴의 주장에 대한 반응이 뜨겁지 않다. 푸틴의 주장에 동조하던 고위 인사들도 요즘에는 나서지 않는다. 텔레그램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러시아의 극우파들도 "모두 테러를 비판하지만, 정확히 누가 테러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고 말한다. 희생자 추모에 공무원들이 강제동원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독립언론 '메두사'는 전했다.

러시아 남부의 오렌부르크에 지난 4월 5일부터 발생한 홍수도 푸틴에게는 국가운영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대형 악재이다. 오렌부르크, 투멘, 쿠르간주 등에서는 우랄강, 토볼강 등이 범람하며 100년 만의 대홍수가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4월 10일 오렌부르크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구조작업에 보안군을 투입했다. 러시아 정부는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언론들은 인근 210곳의 도시와 마을들이 침수되면서 30만여명이 대피했으며, 주택 1만8000채가 침수했고 사망자도 7명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전형적 인재인 대홍수로 민심 이반

러시아 내외에서는 이번 홍수가 천재(天災)가 아닌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나온다. 홍수의 원인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빙(解氷)과 폭우로 우랄강의 수위가 높아져 인근에 위치한 3개의 댐이 파괴된 탓이다. 댐은 지난 4월 9일, 10일, 11일에 차례로 붕괴되었다. 위험을 사전에 통고받지 못한 주민들은 집에 물이 들어오고 나서야 황급히 대피했다. 그런데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알렉산더 쿠렌코프 비상계획부 장관은 TV로 중계된 회견에서 "수일 전에 대피를 권유했지만 주민들이 무시했다"고 말해 오히려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실제로는 현지 오르스크주의 바실리 코주피차 시장이 주민들에게 "댐 붕괴 이틀 전에 댐을 조사했는데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온라인에 게시했다가 사고 후에 삭제했다.

홍수로 인근의 우라늄 광산이 침수되면서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는 토볼강이 방사능에 오염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독일방송은 전했다. 이 광산에는 0.01~0.05% 순도의 우라늄 광석 7077t이 매장되어 있다. 홍수 이전에도 이곳 주민들은 식수오염을 우려하며 당국에 우라늄광산 폐광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국은 주민들에게 2만루블(약 30만원), 재산을 잃은 주민들에게는 10만루블(약 150만원), 사망자 가족에게는 100만루블(약 1500만원) 보상을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시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푸틴은 희생자들에 대한 재정지원이 늦어진다며 지방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주민들은 댐들이 부실하게 건설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시장 등 관리들의 부정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러시아 중앙정부는 이와 관련한 수사에 착수했다.

러시아에서는 눈이 녹는 봄에 홍수가 종종 발생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발생한 것은 기후위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학자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정치지도자들의 의지가 없으면 이번과 같은 참사는 더 잦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러시아가 기후위기에 장기적으로 대비하려면 도시계획이나 댐 건설에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도 금기시되고 있다고 '모스크바타임스'는 전했다. 극우파 일부는 미국이 인위적으로 기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한 전문가는 "우리도 기후위기를 미국이 알래스카에 설치한 안테나로 만들어낸다는 등의 거짓주장(fake stories)을 이제 그만 중단하고 과학적 관점에서 기후위기의 원인을 설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단체인 '에코디펜스'의 블라디미르 슬리뱌크는 기후변화에 대책이 없으면 러시아는 앞으로 전례 없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적응한다고 해서 재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는 크게 줄일 수 있다. 러시아 같은 큰 나라에서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지금 전쟁에 쓰는 돈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러시아인들은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을 계속 겪어야 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이번 재난과 관련해 푸틴은 현장에도 가지 않았으며, 4월 26일에야 현지 지도자들을 불러 상황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언론들에 따르면 푸틴은 쿠르간 주지사가 지난 1월 사임한 사실을 파악하고 매우 놀라며 선거를 실시할 것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독립언론인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테러에 이어 대홍수는 "자신의 권력유지 이외에는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는 푸틴 때문에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중병설이 나도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 photo 뉴시스

중병설이 나도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 photo 뉴시스

체첸 이끄는 '푸틴의 맹견' 위병설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이 췌장질환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도 푸틴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푸틴의 맹견'이라고도 불리는 카디로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러시아에 지원군을 보냈다. 그런데 최근에는 카디로프가 불치의 췌장괴사(pancreatic necrosis)를 앓고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카디로프는 2019년에 처음 이 질병에 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카디로프 측이 제공한 보도 영상들에도 매우 마른 모습이거나 복부 팽만, 부자연스러운 발음, 경직된 자세 등 질병을 추정할 만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지난해 러시아 정보에 정통한 우크라이나의 부다노우 군정보국장은 카디로프가 신장질환으로 시달렸지만 일단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독립언론인 '노바야가제타' 등에서 푸틴이 카디로프의 후계자 선정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카디로프는 지난 4월 23일 실내운동을 하는 광경을 담은 동영상을 텔레그램에 올렸지만 언제 영상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푸틴은 체첸의 독립 요구를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진압한 끝에 러시아의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카디로프는 푸틴이 체첸을 제압한 이후 체첸 지도자로 세워놓은 인물이다. 카디로프는 체첸을 폭압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푸틴에게는 체첸전쟁의 승전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체첸은 여전히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온존하는 휴화산 같은 지역이다. 카디로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체첸인들을 러시아군으로 참전시켰지만, 일부 체첸인들은 우크라이나 편에 서기도 하였다.

러시아 국방부 고위 관리의 비리 사건도 푸틴에게는 좋은 일은 아니다. 티무르 이바노프 차관이 지난 4월 23일 뇌물수수 혐의로 FSB에 체포되었다. 이바노프가 철창에 갇힌 상태로 법정에 출두하는 광경이 러시아 TV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푸틴은 당선 직후 FSB에 군 획득 분야에 만연한 부패를 뿌리 뽑으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이바노프 차관은 국방부에서 건설 등 계약을 담당해 왔으며, 화려한 생활로 포브스지로부터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안보관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이 발탁한 측근이다. 때문에 그가 구속된 것은 국방부에서 쇼이구 장관과 가까운 인물들을 숙청하기 위한 전조일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의 가디언은 분석했다. 쇼이구 장관 역시 모스크바 근교에 대저택을 건설하는 등 화려한 생활로 비판을 받고 있다. 푸틴이 새 임기를 시작하면서 2012년부터 국방장관에 재직한 쇼이구 장관을 경질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대홍수, 국방차관의 뇌물수수 등은 모두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 악재들이다. 푸틴이 이를 만회하려면 우크라이나에서 쾌승을 거두어야 한다. 다행히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쏠쏠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도네츠크 지역에서 접전을 벌이던 아우디우카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약화된 틈을 타 우크라이나 전역에 무차별 공습을 가할 수도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와 도네츠크주의 차시우 야르를 다음 목표로 정하고 공세를 강화 중이다.

지난 4월 22일에는 하르키우의 TV타워가 공습으로 파괴됐으며 거의 매일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안이 미국 하원에서 표류하면서 러시아의 자신감을 부추겼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하르키우를 '청정지역(sanitary zone)'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4월 20일 미국에서 608억달러 지원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었다. 당장 유럽의 미군기지 등에 있는 무기들이 철도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신속히 공급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미국이 우선 지원할 무기는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 공세를 요격할 대공방어체제와 155㎜ 포탄이다.

드디어 재개된 미국의 우크라 원조

미국은 사거리 300㎞의 신형 에이태큼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2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ATACMS 미사일이 지난 3월 이미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며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탄도미사일을 조달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ATACMS는 러시아가 점령한 크름반도 깊숙한 곳까지 타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전장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무기의 하나로 기대받고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4월 17일 ATACMS로 크름반도의 러시아군 공항을 타격해 러시아의 최신 방공망인 4개의 S-400 지대공미사일시스템과 3개의 레이더기지, 방공지휘소 등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ATACMS로 러시아 본토와 크름반도를 잇는 케르치대교를 파괴하고 크름에 공세를 집중하면 러시아군이 하르키우 등 다른 지역을 공격하는 것을 일정하게 분산시킬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지난 4월 25일 미국의 ATACMS 제공을 비판하면서도 "전쟁의 결과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국이 608억달러를 지원하고 ATACMS를 제공한 것이 우크라이나의 연명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그냥 해본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러시아에 군사적으로 좀 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속출한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헌터 스톨 연구원 등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대공방어(air defense)와 미사일방어(missile defense)의 중요성이 드러났다고 강조한다. 대공방어 능력이 지상전의 승패와 민간인의 피해를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미국 하원에서 우크라이나 지원법안이 통과된 후 서구는 우크라이나의 대공방어망을 보강 중이며 올 연말부터는 우크라이나 공군에 F-16 전폭기가 실전투입된다. F-16은 러시아 공군이 우크라이나의 대공방어망을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지상군 공격도 가능하다.

미국의 전략분석가 마크 토트와 조나단 스위트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거주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곳으로 날아드는 러시아의 드론, 미사일 등을 요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300여기의 미사일과 드론을 미국, 영국 군이 요격한 전례를 따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푸틴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이나 러시아군 승리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러시아가 제공권을 잃게 되면 우크라이나를 '청정지역'으로 만들려는 푸틴의 꿈은 요원해질 수 있다. 이래저래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푸틴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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