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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1-05 11: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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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할리우드도 울고 갈 실사급 CG 게임 속 구현… 엔씨소프트 3D 스캔 스튜디오 가보니
내용

입력2024.01.05. 오전 6:01  수정2024.01.05. 오전 8:57

 

영화에서 활용되는 촬영기법, 게임 속으로
얼굴 피부 질감, 모공까지 생생하게
야외 촬영은 1박 2일 걸리기도
데이터 모델링 작업 거쳐 곧바로 제작에 활용할 수 있도록



웹툰·게임·K팝·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한류 재도약을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K-콘텐츠가 전 세계 문화와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팬덤 비즈니스 등 새로운 산업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K-콘텐츠의 인기 비결과 산업 전망, 시장 공략 전략 등을 살펴본다.[편집자주]
 

지난달 1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엔씨소프트 사옥 내 3D 스캔 스튜디오./고운호 기자
올해 북미·유럽 지역에 출시 예정인 엔씨소프트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신작 ‘쓰론앤리버티(TL)’를 실행하면 블록버스터 영화와 흡사한 수준의 튜토리얼 영상이 시작된다. 파괴의 여신을 가뒀던 별이 세상에 조각조각 뿌려지고, 이 별 조각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는 세계관 설정이 튜토리얼에 담겼다. 전투씬인 만큼 공포에 질린 어린 아이의 표정이라든지, 악인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등 캐릭터들의 표정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의 표정을 구현하는 데 사용된 기법이 바로 ‘3D 스캔’이다.

3D 스캔은 그동안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종종 쓰여왔던 기술이다. 예컨대 영화 ‘어벤져스’에서 헐크 캐릭터나, ‘어벤져스’ ‘스파이더맨’ 등 마블시리즈의 배경인 뉴욕시의 모습 등이 3D 스캔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됐다. 영화 ‘아바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에도 3D 스캔이 활용됐다. 하지만 게임에 3D 스캔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게임 유저들이 현실과 같은 수준의 캐릭터를 요구하게 되면서 영화에서 쓰였던 기법들이 게임까지 도입된 것이다.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실사형 그래픽은 실제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TL 트레일러 영상 중 조회수 1052만회로 가장 높은 ‘시네마틱 트레일러 2: 위대한 도전’ 영상에는 “이런 영상을 만들 만한 도구를 도입했으면 콘솔 게임을 여럿 만들어보면 좋겠다” “Awesome work, that trailer is worth an award(대단하네, 이 트레일러 상 받아야 할 만큼 훌륭하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실제로 트레일러 영상 조회수 중 절반 이상은 PC와 콘솔 게임 인기가 높은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폴란드 게임 개발사 CD 프로젝트의 ‘더위쳐3′, 미국 락스타 게임즈의 ‘GTA5′ 같은 실사형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도 3D 스캔 기술이 활용됐다. 특히 GTA5의 경우 누적 판매 1억8000만장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게임 중 하나다. 엔씨소프트 역시 세계적인 게임들과 어깨를 견주고자 기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달 14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엔씨소프트 3D 스캔 스튜디오를 방문해 제작 과정을 체험해봤다.
 

엔씨소프트 3D 스캔 스튜디오에는 156대의 DSLR 카메라가 원형으로 배치돼 있다./고운호 기자

솜털, 잔주름, 모공까지 생생하게 구현


3D 스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천장까지 조명이 닿아 있는 ‘전신 부스’와 구(球) 형태의 ‘라이트 케이지’가 마련돼 있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17년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본사 사옥에 3D 스캔 스튜디오를 구축했는데, 장비를 점차 추가하면서 공간이 부족해지자 2021년 본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제2기업부설연구소로 스튜디오를 옮겼다.

전신 부스에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기 위해 156대의 DSLR 카메라가 원형으로 배치돼 있었다. 모델이 부스 중앙에 올라서면 키와 체형에 맞게 카메라가 조정되며, 한 번에 156대의 카메라가 신체 각 부위를 겹치는 곳 없이 촬영한다. 각 카메라가 촬영한 사진은 전용 PC로 전송이 되고, 각각의 사진을 중첩시켜 거리값, 위치값 등을 계산해 3D 이미지로 가공한다.

라이트 케이지는 상세한 피부 표면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스캔 장비다. 라이트 케이지에는 DSLR 카메라 60대가 설치돼 있다. 전신부스에 비해 카메라 대수는 적지만 더 선명한 화질로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라는 게 엔씨소프트의 설명이다. 라이트 케이지에 달린 조명은 156개에 달한다. 자연스러운 빛이 비춰졌을 때의 모습과 빛이 아주 강조된 모습, 어두운 모습 등 다각도의 빛과 화각에서 순식간에 수백 장의 사진을 연사로 촬영한다. 잔주름이나 모공 등 실제 사람의 피부를 세밀하게 구현하고, 얼굴의 색상 변화까지 정교하게 담는다. 촬영 전에는 얼굴에 있는 솜털까지 제거해야 한다.

게임의 배경으로 쓰이는 곳도 3D 스캔 기술을 활용한다. 야외에서는 레이저스캐너, 드론 등을 활용해 촬영하는데, 사람이 전신 부스나 라이트 케이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실내에서는 여러 대의 카메라로 한 번에 촬영을 해야 하지만, 야외에서는 일일이 촬영점을 잡아서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고택(古宅) 하나를 촬영하는데 1박 2일이 걸리기도 한다.

촬영된 사진으로 1, 2차 가공을 거쳐 정돈된 모델링 데이터를 만든다. 다양한 모델의 샘플을 구축해둬야 게임 개발자들이 곧바로 제작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가공은 최대 2주면 끝나기 때문에 3D 스캔을 하면 제작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기존 제작 방식은 일일이 캐릭터나 물체, 배경을 만들고 완성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해서 많은 시간과 인원, 비용이 들었지만 3D 스캔을 활용하면 품질은 높이면서도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모바일에 최적화된 게임을 주력으로 하는 게임사들이 많아 아직까진 3D 스캔 기술을 전면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 게임사들이 북미, 유럽 등 글로벌 게임 시장을 공략하려면 이 같은 기술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모바일보다 콘솔이나 PC 게임 비중이 높기 때문에 게임 완성도를 위해 고품질의 그래픽이 필수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콘솔 게임의 경우 유저들이 초고화질의 대형 화면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게임 엔진 기술력 높아지며 초고화질 경쟁 격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콘솔 게임 시장 규모는 551억1400만달러(약 70조1601억원)로 유럽 게임 점유율은 43.8%, 북미는 38.8% 수준이다. 한국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한국게임정책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홍 숭실대 교수는 “한국 게임은 지난 30년 동안 그래픽 뿐 아니라 서버, 스토리까지 차곡차곡 기술력을 쌓아오며 발전을 거듭해왔다”며 “콘솔 게임 분야에서 해외 게임사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이 생긴다면 국내 게임사들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게임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국 게임사의 콘솔 게임이 북미, 유럽 시장에서 한 번 인정받게 되면 그 다음 차기작은 더욱 이목을 끌 수 있게 되고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면 콘솔 게임으로 성공하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게임 개발 엔진이 발전을 거듭하며 가상현실(VR) 게임, 메타버스까지 등장하자 유저들의 몰입도를 위해 그래픽이 점점 고도화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 에픽게임즈가 제작한 리얼타임 3D 그래픽 솔루션 제작 툴 ‘언리얼 엔진5′는 지난 2021년 출시됐는데, 당시 에픽게임즈는 “진짜 실사급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작인 언리얼 엔진4에서 이미 PC, 가정용 게임기, 스마트폰은 물론 VR, 영화·애니메이션 제작, 건축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됐으며 언리얼 엔진5는 이보다 성능이 향상돼 영화 퀄리티의 메타버스까지 제작이 가능해졌다.

이에 세계 각국 게임사들은 콘솔과 PC, 모바일을 가리지 않고 초고화질 게임 개발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일본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의 ‘샌드랜드’, 스웨덴 펀콤(Funcom) ‘듄 어웨이크닝 (Dune Awakening)’ 등이 언리얼 엔진5를 기반으로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게임사 중에서는 위메이드가 ‘나이트크로우’에 이어 ‘레전드 오브 이미르’를 언리얼 엔진5를 기반으로 개발 중이다. 넥슨 ‘퍼스트 디센던트’, 크래프톤 ‘인조이’, 넷마블 ‘RF 온라인 넥스트’ 등도 언리얼 엔진5로 개발돼 줄줄이 출격 대기 중이다.

펄어비스는 자체 엔진을 개발해 초고화질 게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붉은 사막’ 등 펄어비스의 기술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미국 락스타게임즈 GTA5 시리즈의 후속작인 GTA6도 자체 개발한 엔진을 사용했는데, 언리얼 엔진5의 성능에 버금간다는 평가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을 실행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그래픽이기 때문에 그래픽의 퀄리티가 게임의 인상을 좌우할 수 있다”라며 “한국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완성도는 필수”라고 말했다.
 

변지희 기자 z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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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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