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명의'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이계영 교수
우리나라에서 부동의 사망률 1위 암은 폐암이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2022년 10대 암 사망 분율 발표에서도 폐암이 전체 암 사망자의 26.8%로, 어김없이 1위를 차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조기 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1기 폐암의 5년 생존율은 그래도 평균 80%에 달한다. 그러나 2기가 되면 50%, 3기엔 30%, 4기는 5%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하지만 아직 폐암을 정확히 진단하는 방법은 암이 의심되는 병소에서 조직을 떼어와 확인하는 '생검'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CT에서 암일지도 모르는 물체가 보여도 ▲1cm 미만으로 작거나 ▲간유리 음영 결절일 때 등 암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 땐 먼저 경과를 관찰한다. 진단이 지연되는 것. 실제로 폐암 환자의 약 70%는 수술이 어렵고, 긍정적인 치료 결과도 기대하기 힘든 3기 이후에 진단받는다. 감수하고 수술 후 조직 검사를 받았을 때 암이 아니었다면 환자만 고생한 셈인데, 이런 경우도 15% 정도 된다.
놀랍게도 국내 연구진이 조직 검사 없이 폐암을 진단할 수 있는 '폐세척 액상생검'을 개발해 냈다. 실제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 이계영 센터장(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을 찾아가 '폐세척 액상생검'의 구체적인 활용법에 관해 들었다.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이계영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 폐세척 액상생검이란 무엇인가?
기관지내시경으로 폐암이 의심되는 병소에 식염수를 주입해 폐세척을 한 후, 회수된 폐세척액으로 폐암을 진단하는 검사다. 회수한 폐 세척액에는 암세포가 분비한 엑소좀이 다량 존재해 유전자 검사로 폐암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임상개발은 완료했지만, 식약처 승인과 신의료기술 인증을 취득해야만 모든 의료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 절차를 밟고 있고,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건국대병원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임상연구 동의서만 작성하면 무상으로 폐세척 액상생검을 받을 수 있다. 이 검사 결과를 기반으로 실제 환자 진료도 하고 있다.
- 엑소좀이 무엇인가?
엑소좀은 세포와 세포가 통신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이다. 엑소좀 안에 DNA, RNA, 단백질 등 주요 생체 인자를 탑재해 다른 세포로 전달한다. 마치 스마트폰으로 메일, 동영상 등을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암세포는 이 엑소좀을 매우 많이 분비한다. 15~30마이크로미터 정도 되는 미세한 나노 입자라, 전자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고 분리가 어렵다. 그러나 분리만 잘하면 이중 막 구조로 안전하게 주요 생체 인자를 보존하고 있어, 분석해 암을 진단할 수 있다. 엑소좀은 침, 혈액, 소변, 흉수, 뇌척수액 심지어는 모유에서까지 확인할 수 있다.
- 혈액, 소변 등으로도 엑소좀을 얻을 수 있는데, 왜 폐세척액으로 검사를 진행하는가?
처음에는 혈액, 소변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물질을 이용하려고 했으나, 민감도가 높지 않았다. 3, 4기 진행 전이성 폐암에서는 상당히 잘 확인되는데, 1기 암에서는 거의 20~30%밖에 나오지 않았다. 반면 폐세척액에선 순도 높은 엑소좀을 분리할 수 있었고, 민감도와 정확도도 훨씬 높았다. 연구·개발을 추진한 진 약 7~8년 정도 됐다.
- 폐세척액으로는 얼마나 조기에 폐암을 진단할 수 있는가?
폐세척 액상생검을 이용한 EGFR 유전자 검사의 정확성은 진행성폐암에서 95% 이상의 민감도, 특이도, 정확성을 보인다. 조직검사 결과 없이 표적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2기 폐암에서도 90% 이상 정확성을 보이고 있다. 1기는 90% 정확성은 보이지만 민감도가 70~80%대로 조금 낮아서, 엑소좀 DNA 메틸화 검사와 RNA 분석으로 1기 암 민감도도 더 올리는 연구를 하고 있다. 2~3년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 검사를 아예 대체하는 게 목표다. 지금은 법에서 암세포를 확인해야만 처치가 가능해, 보조적인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폐암 치료 성적을 향상하려면 초기 폐암 환자를 많이 찾아야 한다. 현재 폐암 진단 당시 병기 분포를 보면, 4기 암이 제일 많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40%다. 면역항암제, 표적항암제 등 항암제 개발이 활발하게 발달하면서 4기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은 늘어났지만, 궁극적으로 완치는 어렵다.
- EGFR 유전자 변이 폐암만 확인 가능한가?
EGFR 변이 폐암에 관한 임상 개발은 거의 완료 됐다. EGFR 유전자 변이 폐암에 먼저 주목한 이유는 표적항암제가 굉장히 발달해 있는 데다가, 우리나라 폐암 환자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가 늘고 있는데, 이 환자 3명 중 2명은 EGFR 환자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변이 폐암이 KRAS 변이 폐암으로, 약 10% 정도 된다. 지금은 이 유전자 변이를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 폐세척 액상검사로 수술 재발률도 낮출 수 있다고 들었는데?
폐세척 액상검사로 전략적인 수술 계획이 가능해졌다. 수술 전에 폐암의 유전자형을 확인해, 표적 항암제로 선행치료를 해서 병기를 하향시켜 수술하면 재발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폐암 사망률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수술 후 재발률이다. 세계폐암학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폐암 1a기 환자는 재발률이 8%지만 3기로 넘어가면 60% 이상으로 올라간다. 현재는 재발 방지를 위해 수술 후 결과를 보고 보조 항암 치료만 하고 있다. 그러나 선행치료 후 수술하면 재발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고, 실제 폐세척 액상검사로 수술 전 항암 치료를 하면 얼마나 재발률을 줄일 수 있을지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 1단계는 끝났고, 추적 중이다. 중간 결과를 지난해 대한폐암학회 때 발표했는데, 44% 환자의 병기가 실제로 떨어졌다. 3기 환자가 1기가 되기도 했다. 2년 정도 지나면 최종 결과가 나온다.
- 폐세척 액상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가?
하루면 결과를 알 수 있다. 보통 조직 검사를 하고 암세포 확인하는데 약 3~4일 걸린다. 폐암 세포인 걸 확인한 후 환자 동의서를 받아 유전자 검사를 하면 또 보름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 환자는 그간 불안하게 기다려야 한다. 특히 증상이 심한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항암 치료를 해야 하는데, 이때 폐체척 액상검사 활용도가 매우 높다고 본다.
- 폐세척 액상검사 키트도 개발했다던데?
엑소좀을 활용하는 건 매우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까지 개발되지 못했던 이유는 분리가 어려워서였다. 초고속 원심분리를 해야 하는데, 중력의 10~20만 배로 돌려야 해 장비가 매우 비싸다. 우리 병원 실험실에서는 가능하지만, 다른 병원은 아니다. 국내외 모든 폐암 의심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 폐세척액에서 바로 엑소좀 DNA를 뽑아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키트를 개발했다. 현재 식약처 허가, 신의료기술 인증 절차에 진입했다. 내년 상반기 내에는 기관지 내시경을 할 수 있는 모든 병원에서 이 키트로 폐암을 검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폐암은 증상이 생기면 적어도 3기 이상이다. 유병률도 높고, 사망률도 높으므로 저선량 CT 검사를 한 번쯤은 받아보길 권한다. 30년 이상 담배를 피운 54세 이상 고위험군은 굉장히 폐암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매년 저선량 CT를 찍어야 한다. 중년 이후라면 비흡연 여성도 5년에 한 번 정도는 저선량 CT를 찍어보면 좋겠다. 이 외에도 ▲가족 중 폐암 병력이 있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직업적으로 조리흄, 미세먼지 등에 자주 노출되거나 ▲천식·결핵·COPD 등 폐질환이 있다면 한번쯤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이계영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쳤고, 현재 건국대병원 의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 최고 석학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이다. 학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대한폐암학회 이사장, 대한표적치료연구회 회장,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분자폐암연구회 회장, 한국엑소좀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강한 실행력으로 다양한 연구 성과도 보여왔는데, 엑소좀에 EGFR 변이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직접 만난 이계영 교수는 폐암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는 의사이자 연구자였다. 온몸에서 열정이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