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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3-25 12: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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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2000년생의 새로운 시선·언어… 우리 자아의 ‘현주소’를 찾다
내용

 

입력2024.03.25. 오전 9:16  수정2024.03.25. 오전 9:52

 



■ 등단 5년만에 첫 시집 낸 한재범
 

“생일에도 공장에 나오래 납품 일자를 지키래 나와서 제품 생산하래 벨트 앞에서 자리 지키래 내 자리가 그 자리래 제 자리에서 나오지 말래//…내가 태어난 해에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태어났대 내가 그렇게 흔한가 여기 나랑 동갑인 사람이 많대 우린 서로 이름으로 부른 적 없지 저기요 거기 제 자리예요.”(밀레니엄 베이비)

2000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 시인이 자신의 세상과 세상 속 자신에 대해 담담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2019년 스무 살의 나이로 창비신인시인상 최연소 수상 기록을 새로 썼던 한재범 시인이 등단 5년 만에 첫 시집 ‘웃긴 게 뭔지 아세요’(창비)를 펴냈다.

시집에는 한 시인의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폐공장, 옛날 빙수 가게, 자동문, 무인 카페, 주차장. 특별하지 않은 공간에서 시인은 본 적 없는 시를 쓴다. 이수명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시의 출현은 새로운 의구심”이며 “그동안의 언어와 인식에 낯선 시선을 들여오는 일”이라는 점에서 한 시인의 시를 두고 “우리 자아의 현주소”라는 찬사를 보냈다. 시를 읽다 보면 세대만 새로운 것이 아닌 새로운 시선과 새로운 언어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전 잘 모르겠거든요. 어떤 농담은 누군가에겐 웃음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비웃음과 상처가 되기도 하죠. 그게 시랑 조금 비슷하게 닮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시도 잘 모르긴 하는데, 모르겠는 마음으로 계속 쓰려고요.”

한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다 생각을 잃어버리고 함께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주제도 곧잘 잃어버린다. 농담도, 세상도, 시도 모르는 채로 던지고, 살고, 쓰는 셈이다.

이른 나이 등단한 한 시인에게는 슬럼프도 있었다. 첫 시집이 나오기까지 5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등단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생기고 시 쓰는 게 무서웠어요. 분명 내가 사랑했던 일인데, 어떤 시를 쓰면 그로 인해서 제가 어떤 시인인지를 말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죠.”

2년 동안 시를 쓰지 않기도 했다는 한 시인은 결국 시를 쓰는 즐거움의 대체물을 찾지 못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시는 둘 다 해당하지 않잖아요. 정말 필요한 일인데 하기 싫어서 미뤄두고 다른 일을 하는 그 느낌이, 그게 매력적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며 ‘MZ 시인’에 대한 한 시인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시인은 “제가 나이로는 분명 MZ 시인이 맞다”면서 “빠르게 몰입했다 빠르게 싫증 내는 MZ와 아무리 짧게 써도 쇼트폼을 만들어낼 수 없는 시인이 붙어 다니는 게 좀 웃기지 않나요? 이것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장상민 기자(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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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