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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5-06 1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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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나이 오십에 회사를 그만둔 결정적 이유
내용

 

입력2024.05.06. 오전 11:08

 

나이 오십에 회사를 그만둔 데에는 표면적, 현실적,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표면적 이유로는 출퇴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5년 전 회사가 강남으로 이전하며 왕복 출퇴근 시간이 4시간에 이르게 됩니다.

2023년 12월 통계청과 SK텔레컴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출퇴근 소요시간은 72.6분, 통근 이동거리는 18.4킬로로 나타났으며, 수도권이 소요시간 83.2분, 이동거리 20.4 킬로로 2관왕을 무난히(?) 달성했습니다. 수도권이 1위를 차지한 이유는 저처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경우 소요시간 120분. 이동거리 45KM로 전국 최상위 레벨의 수치를 기록하며 길바닥에 시간과 체력을 갈아 넣었습니다.

두 번째 현실적 이유는 인간의 수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임원눈치, MZ눈치, 가족 눈치 보며 회사를 다닌다면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퇴직 이후에도 일을 해야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2025년부터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화 시대에 돌입합니다. 현재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X세대가 퇴직하는 시기는 고령화가 더 심각해질 것이고, 60세가 되는 10년 후에도 나는 어떤 식으로든 경제활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슬프지만 명확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60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한 살이라도 젊은 50세가 좀 더 적응이 쉬울 것이라는 것 또한 명확한 사실입니다. 퇴사 소식을 접한 또래의 동료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 마주쳐야 할 냉혹한 현실을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어 했습니다. 월급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즉시 대체할 마땅한 당분이 없는 것도 이유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년이 늘어난 덕분에 인간은 더 오랜 시간 일해야 하고, 제2의 직업이 필수인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저의 결정에 수긍한 이들이 물었습니다. 도전에 박수를 보내지만, 당신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25년을 일한 이에게 어디로 여행을 갈 거냐? 어떤 재충전을 할 거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남들 따라 부지런히만 살아온 한국인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저는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여유자금이 넉넉하지도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인생관이 바뀌기 몇 해 전의 저였다면, 이런 저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이유

저는 시골에 태어난 장남이며 슈퍼울트라 J입니다. 타고난 성향과 더불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학창 시절부터 인생계획을 철저하게 세웠습니다. 군 전역 후에는 시간을 분 단위로 계획하며, 꿈을 좇는 대신 시간에 쫓기며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저축한 돈을 모아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에는 계획에 더욱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명문대학 진학도, 대기업 취업도 못했고, 좀비처럼 출퇴근만 반복하다 번아웃에 이른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에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이제는 계획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봐야겠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지?'

표면적, 현실적 이유로 나 자신이 납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실행에 옮기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세상이 무너진다고 회사를 그만둔 적이 없는 사람들이 염려했습니다.

이제 나이 오십에 회사를 그만둔 결정적 이유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계획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쓴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자, 자신감을 얻은 저는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오마이뉴스의 연재 글이 초석이 되어 책으로 출간되는 일련의 과정이 기적처럼 펼쳐졌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 작가의 산책길 올레길에서 만난 표지
ⓒ 김재완

 
과거의 제가 불행했던 이유는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남들이 가는 길 위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스스로 납득이 되는 기획에서 시작되어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결과에 관계없이 행복합니다. 글을 쓰며 마음의 청춘이 시작되었으며, 돈과 상관없이 건물주보다 행복한 나만의 소우주를 창조하는 조물자가 되었습니다. 저의 성향과 취향에 딱 맞는 일을 마침내 찾은 것입니다.

계획은 없지만 바람은 있고, 꿈도 생겼습니다.

작업 중인 역사 이야기와 에세이가 책으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원래 직업에 종사하다 우연히 발견한 새로운 일에서 큰 성과를 냈다는 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걸까요? 그래도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저 같은 사람 한두 명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이 오십에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는 직업은 아닙니다. 제 꿈은 날개 달린 물고기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들과 다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세상을 유영하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  올레길 풍경
ⓒ 김재완

김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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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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