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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4-19 12: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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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승만 아들, 전두환 손자, 그리고 이기붕 아들 4.19 63주년을 맞아 과거청산을 생각한다
내용

 

23.04.19 11:18l최종 업데이트 23.04.19 11:18

 

4.19 혁명이 일어난 지 63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는 수많은 고난을 겪다 기사회생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4.19는 그 중 선봉에 섰기 때문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다고 할 정도니 굳이 더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다.

4.19는 단순히 한 정권을 몰아낸 사건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시발점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난 혁명의 완수는 민주주의 상태를 단지 회복하는 데만 있지 않다. 그 상태를 좀 더 완전히 만드는 데 있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기초적인 민주주의는 회복했지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포용 문제 등에서 지지부진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아직 민주화 과업에 올라타 있지 내려올 때는 아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앞으로 가는 것'이어야겠지만, '뒤를 돌아보는 것'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어떻게 뒤를 돌아보는가? 우리가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다. 사실 이 문제는 민주주의 회복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비민주적 역사 청산은 민주주의 회복에 있어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지 않나?

이승만의 아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시대는 여전히 민주주의 회복의 최소 원칙조차 방해하고 있다. 이승만의 아들 이인수씨를 보자. 이승만의 양자인 그는 최근까지도 이승만을 옹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행보가 있다면 2011년 그가 4.19와 관련해 양아버지 이승만을 대신해 사과하려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사과는 4.19 유족회에 의해 거부당했다.
 

19일 오전 8시 55분쯤 이인수 박사와 이승만기념사업회측 10여 명이 노란색 미니버스 한 대를 타고 묘지 안으로 들어왔으나 4.19관련 단체 회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밖으로 밀려났다. 

4.19단체 회원들은 이 박사를 보자 "여기 왜 왔냐"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고, 이 박사는 현재 묘지 밖 큰 길까지 밀려나 있다가 오전 9시 13분경 4.19묘지를 떠났다. 

이인수 박사는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대한민국 건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4.19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정신은 한 뿌리"라며 "역사적인 화합을 위해서 그 시점이 바로 오늘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오게 됐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186명 총탄에 죽고 6천명 부상당했는데 이승만 동상 광화문 세우려고 거짓 사과", 2011.04.18.


이인수씨는 4.19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을 높게 평가했지만 동시에 4.19가 일어난 원인인 3.15 부정선거에 대해 이승만의 책임을 지우려고 시도했다. 이러니 유족회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피해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방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

더욱이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일부 희생자를 인정할 수 없다고 소송전을 펼쳐 제주 4.3 유족회의 분노를 샀다. '일부만 문제가 있다' 수준이었으면 차라리 참작이라도 할지 모르겠으나, 이인수씨는 끝내 제주 4.3 유족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물러나고 반세기가 넘어 그의 유족들은 일방적인 사과를 그것도 선택적인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것을 '화합'으로 포장했다. 물론, 피해자가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는 이상 화합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이들은 몰랐다.
           
전두환의 손자

시간은 다시 10년 넘게 흘러 2023년. 한 남성이 5.18 민주묘지 앞에서 무릎 꿇었다. 바로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은 정당했다고 항변까지 했다. 그리고 이를 옹호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행동을 '폭동'이라 왜곡하는 세력은 굳건했다. 이럴 때 전두환 가족이 직접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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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광주) 학살 주범은 나의 할아버지 전두환이다"이라며 자기가 무엇을 사죄하러 왔는지 분명히했다. 학살 희생자 묘비 앞에 무릎 꿇은 전우원씨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 묘비를 닦기까지 했다.

전우원씨의 이런 행보에 대해 여러 말이 있다. 과연 20대 청년인 그가 사과함으로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문제의 곁가지만 일부 쳐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손자인 그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짊어지도록 하는 것이 옳을까? 나도 아직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전우원씨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줬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군의 어머니 김길자씨는 "저는 문재학이 엄마입니다. (우원씨가) 용기를 내줘 감사하다"며 전두환의 손자를 안아줬다.

다른 유족과 부상자 등 피해자들 역시 "그 마음 변치말고 5·18 진실 찾기에 앞장서 달라" "용기를 내줘 고맙다. 앞으로는 약(마약)도 끊고 5·18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일부는 "전두환 손자의 사죄를 계기로 숨어있는 가해자들의 양심 선언과 진실 고백이 나와야 한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 오마이뉴스, 2023.03.31, 무릎 꿇은 전두환 손자 "할아버지는 광주학살 주범, 사죄드린다"


많은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었지만, 사람의 진솔한 감정은 때때로 그 의문들을 모두 뛰어넘는다. 광주 시민들이 오히려 전우원씨를 걱정해주는 모습까지 보면 진심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한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청산될 수 있는 역사라면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어가는 것

전우원씨와 같은 행보가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이인수씨가 한 행적은 자연스럽게 부끄러운 행위가 되어야 한다. 국가폭력을 반성하는 사회라면 이것을 기본적으로 잘 행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그렇게 갈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최근 임명된 진실화해위원장은 폭력을 저지른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극우적 사관을 대변해왔다며 비판을 받았다. 기본적인 사실조차 왜곡해 자신의 사관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을 어떻게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힐 수 있을지 피해자 유족들은 반발했다. 

어떤 이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위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언사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을 뒷받침할 성의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제주 4.3 사건에 대해 유족들을 위로하는 말을 자주 했기에 보수정부 대통령이지만, 임기 첫해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을까 하던 여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4.3을 부정하는 사고관을 가진 사람을 요직에 앉혔으니 온전한 문제 해결 과정이 이어지길 바랬던 제주도민의 소망만 물거품이 되었다. 외형상 지금 정부는 '중요한 것은 이어가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민주화 운동에 대한 존중 발언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어가는 실질적인 행위가 없다. 말로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하지 않으니 비민주 역사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은 기초조차 흔들리게 되었다. 

이기붕의 아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라 가해자 유가족에게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바라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시 전우원씨에 대해 생각해보자. 분명 그와 같은 사람은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그 개인이 온전히 책임을 전부 지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그것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비극이다. 사회 전체가 이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려 했다면 전두환 손자가 '내가 이 문제를 사과해야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이미 진작에 해결되었을 문제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기붕 아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은 이승만의 양자기도 했다. 덕분에 당대 권세가 대단해서 가짜 이강석이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권세의 끝은 장렬했다.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사실상 종말의 상태에 진입하자, 이강석은 그의 친부모인 이기붕과 박마리아를 권총으로 쏘고 자살했다. 그렇게 비민주적 역사를 써내려가던 가족은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4.19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떠났다. 이강석은 개인의 결단으로 이 문제를 끝내려 했다. 시민들이 그들에게 물어야 할 책임을 임의로 스스로 해결했다. 아예 책임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지만, 이 또한 무책임하다고 할 수밖에. 이런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명확히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일방적인 사과가 아니라 제대로된 사과가 필요하며, 한 사람만이 이 모든 문제를 짊어지려 가서도 안 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고, 적어도 기초적인 과정은 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4.19 혁명이 일어난지 벌써 63년이나 되었다. 우린 어디에 서 있는가? 민주주의 회복 기초조차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거리로 나섰던 이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는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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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