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한국의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한국소식2024-03-29 09:48:48
0 10 0
[생활/문화] 영화 '파묘'가 불러일으킨 풍수논쟁
내용

입력2024.03.29. 오전 6:01

 

원본보기

2022년 7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을 마친 율곡로는 지하화되었다. photo 뉴시스·네이버지도

원본보기



영화 '파묘'는 일제가 박아둔 쇠말뚝을 모티브로 한다. '일제 쇠말뚝'에 대해서는 풍수(風水)적으로 한국 땅의 기운을 막으려고 '맥(脈)'이 흐르는 곳에 박아 놓았다는 주장과, 토지측량을 위해 산 정상에 삼각점을 설치한 것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맞서왔다. 

최근 풍수학 권위자 전용원 한국역학협회 회장은 '파묘'를 보고 "요즈음 도로 만든다고 조선 왕조 용맥(龍脈)도 자르는데, 일제가 못 박은 것을 문제 삼으니 이상하다"며 풍수적 입장에서 영화를 평가하기도 했다. 전통 풍수에 따르면, 용(龍)은 조산(祖山)의 혈통이 흐르는 산줄기이고 용맥은 땅의 에너지가 모여 있는 조산에서 에너지가 흐르는 줄기를 뜻한다. 

전 회장이 지적한 '도로 만든다고 용맥도 자르는' 일은 구체적으로 '서울 율곡로 지하화 사업'을 가리킨다. 2022년 7월 서울시는 일제가 갈라놓은 창경궁과 종묘를 90년 만에 다시 연결하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을 완료했다.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켰던 율곡로를 지하화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궁과 종묘를 다시 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풍수적으로는 맥을 '단절'시킨 것으로 평가 절하됐다. 유교 국가 조선은 궁궐의 동쪽에 왕가의 조상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와 궁궐 서쪽에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을 두었다. 이것이 '종묘사직'이다. 전 회장의 핵심 문제 제기는 조선의 근간인 종묘사직을 일제가 아닌 우리가 단절시켰다는 것이다.

'율곡로 지하화' 용맥(龍脈) 잘렸다?

1931년 일제는 창덕궁·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언덕과 담장을 헐고 도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율곡로'이다. 궁궐과 종묘를 단절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실제 풍수 전문가들은 율곡로에 대해 "용맥의 혈이 지나는 지점을 도로가 가로질러 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 위에 지붕을 올려 궁궐과 종묘를 연결한 것이 '율곡로 지하화 사업'이다. 하지만 전용원 회장은 "일제가 만든 율곡로는 땅 위를 포장한 것에 불과해 풍수적으로 큰 의미가 없지만 우리는 아예 깊이 파헤쳐서 용맥을 잘라 버렸다"고 주장한다. 

 

율곡로 지하화 사업이 도로를 땅 깊이 파고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지하로 도로를 파고 들어간 이유에 대해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통해 "담장 및 북신문의 원위치 복원, 원지형 복원 등을 중요시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전력의 송전 전력구와 지하차도 등을 설치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기존 도로 면에서 9.5m 터파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지하차도는 기존 도로에서 4.4~5.4m 정도 지하에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지붕으로 겉보기에는 연결되었지만, 땅 깊숙이 파헤쳐 맥을 잘라버리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 풍수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이것은 원래 복원 목적과도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0년 "율곡로가 민족정기를 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서울시는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냥 돔 형태로 도로를 덮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복원 공사는 1931년 발간된 '조선고적도(朝鮮古蹟圖)'와 1907년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의 모습과 복원 모양이 다르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변경된다. 당시 복원 모습이 옛 종묘 담장보다 높은 엉터리 복원이라는 비판이 계속되었다. 기존 도로 위에 돔 형태로 덮어서 숲을 만들 경우, 과거 조선 시대의 모습과는 달라진다는 주장이었다. 모양을 과거와 같게 만들려면 땅을 깎아내려야 했고, 결국 기존 왕복 4차선 도로를 6차선 지하도로로 바꾸고 위쪽에 녹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이에 대해 전 회장은 "지하도로는 서울의 내청룡을 자르는 공사였다"라며 "한국의 수도(首都)인 서울의 핵심부 청룡을 자르는 것으로 왼쪽 손목을 자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풍수에서 혈(穴), 특히 사세(四勢: 조산·안산·좌청룡·우백호)를 건드리는 것은 '금기'다. 혈(穴)은 생기(生氣)가 용을 따라 내려와 맺힌 곳으로 기(氣)가 모이는 곳이다. 음양택의 핵심을 이루는 지점이다. 고대로부터 지대가 높은 곳은 음택(陰宅·무덤을 사람 사는 곳에 비유)으로, 지대가 낮은 곳은 양택(陽宅·사람의 집터)으로 쓰였다. 영화 '파묘'에서 일제가 파괴하려 했던 곳은 한반도 허리의 '혈'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풍수지리서 '금낭경(金囊經)'을 보면 "사세(四勢)란 조산·안산·좌청룡·우백호 등 4곳의 산(四山)을 뜻하는데 사산(四山) 가운데 한 산이라도 붕괴하면 흉지(凶地)의 부작용이 생긴다"라고 적혀 있다. 

'창덕궁 용맥에 화장실 설치' 비판도

전 회장은 "풍수에서 생기(生氣)가 따라 내려오는 산맥이 '용'과 같이 구불구불하고 기복이 있다고 해서 '용(龍)'이라 부른다"며 "흔히 '용이 저기서 내려온다'는 의미로 내룡(來龍)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궁궐에서 종묘로 연결되는 '용'이 잘린 것도 아쉬운데 특히 혈을 자른 것이 심각하다"고 했다. 

율곡로 지하화 공사를 하면서 용맥을 끊은 것도 모자라 용맥에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 회장은 "하필 왜 용맥이 지나는 곳 위에 화장실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궁궐은 풍수를 근거로 만들어졌는데, 풍수적 고려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창경궁과 붙어있는 창덕궁 낙선재 앞에는 화장실이 들어서 있는데 전 회장은 바로 그곳이 용맥이 흐르는 곳이라고 지적한다. 과거부터 용맥 근처에 건물을 짓는 것은 금기였다. 자칫 용맥을 건드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역사적 근거도 있다. 창덕궁을 항공사진으로 보면 낙선재 화장실 근처 인정문 앞마당이 직사각형이 아닌 사다리꼴로 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용맥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 것이 휘어진 이유라는 것이다. 세종 1년(1419년) 당시 상왕이었던 태종은 인정문 밖 마당이 반듯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창덕궁 건설을 지휘한 박자청을 하옥(下獄)했다. 박자청이 직사각형 마당을 만들지 못한 것은 혹시라도 용맥을 건드릴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변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직사각형 마당을 갖고 싶었던 태종도 용맥은 건드리지 못하고 기존 사다리꼴을 유지했다. 항공사진을 보면 애초에 용맥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건물 방향을 비틀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전 회장은 "풍수를 믿고 안 믿고는 나중 문제고, 창덕궁 건립의 기본 취지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조선 왕조의 맥이 흐르는 곳에 왜 화장실이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러한 지적에 문화재청은 과거 화장실 건립 공사 당시 "문화재위원 등의 자문을 거쳐 관람객들의 사용이 용이하고 창덕궁 옛 건물 유구(遺構)가 없는 곳, 기존 시설물(산불진화용 저수조, 방공호)이 설치되어 자연 훼손이 최대한 적은 곳을 선정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정현 기자 johnlee@chosun.com

스크랩 0
편집인2024-04-26